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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사이비 총회 주요결의] 양심적 집총거부 문제(사이비이단대책위)

최고관리자 2022-11-10 (목) 17:50 2년전 1886  

작성자 : 예장총회 (webmaster@pck.or.kr)
작성일 : 2002/04/19 11:17
조회수 : 121

문제제기
요사이 우리사회 일각에서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이 교리와 양심을 앞세워 병역기피나 집총거부로 인해서 물의를 일으켜왔던 문제가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보도된 자료에 의하면 현재 약 1,400여명이 병역거부 혹은 집총거부로 복역중에 있으며 지금까지 이 문제로 실형을 산 사람은 1만명으로 추산되고 1년간 수감자를 위한 경비도 100억원이 소모된다고 한다.
상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부 정치계와 법조계, 그리고 일부의 언론인들이 나서서 “대체복무제”라는 것을 입법화하려는 시도가 있고 이를 위해 각종 세미나나 매스콤을 통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집총거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체복무나 사회봉사등으로 대안을 세우는 것은 적절치 않은 방안이다. 소수자의 인권보호니 종교적 양심으로 집총거부하는 것은 보호되어야 한다 등으로 여론을 형성하여 대체복무제를 입법화 하려는 시도가 있는데 이는 거부되어야 할 사안이다. 특히 한국의 특수한 안보적 상황에 대한 고려없이 지금 이 문제를 가지고 소수자의 인권보호니 종교적 양심행위니 하는 말로서 동정심을 유발하고 여론 몰이로 분위기를 조성하여 해결해 보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또한 이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은 대다수 기독교로부터 이미 이단으로 낙인 찍힌 소수집단으로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의 교리를 왜곡시킬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에 미치는 악 영향이 매우 크므로 극복되어야 할 집단임을 밝혀야 할 것이다. 집총거부와 관련해서 대체복무 입법추진에 반대하는 한기총 총무 박영률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법안은 종교간 형평성을 깨고 특정 종교에 부당한 혜택을 주는 것이다. 집총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거의 100% 여호와의 증인 신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생각해보자. 과연 여호와의 증인만이 대상이 될까. 어느 종교든 전쟁을 거부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 수 있는 개연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특화하는 새로운 종교의 출현도 예견해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칫 병역기피자의 도피처로 악용될 수 있고 나아가 국방의 근간을 무너뜨릴 위험성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본 교단(예장통합)의 입장을 밝히고저 한다. 먼저 여호와의 증인의 개요와 그들이 주장하는 교리적 오류 그리고 그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특별한 관습에 대해 살펴보고 다음으로 기독교의 전쟁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조명해 보고 본 교단의 입장을 말하고자 한다.

여호와의 증인
여호와의 증인은 기독교에서 파생된 이단으로서 1872년 미국의 C.T.러셀을 중심으로 소시민층에서 발생했다. 전 세계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는 2,680,274명(84년)으로 되어있다. 한국에는 1912년 R.H.홀리스터가 전파하여 <파수대>, <깨어라>, <성경공부> 등 소책자를 출판하며 문서전도를 실시하여 왔다. 현재 신도수가 약 27,000명에 왕국회관(교회)이 약500여 처로 되어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보편적인 기독교회로부터 이미 이단으로 낙인찍힌 집단이며 세계 48개국으로부터 불인정을 받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나 대체복무등)
여호와의 증인이 이단으로 간주되는 이유는 첫째로 교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몇가지 예를 든다면
1) 기독교 신학의 중심이되는 삼위일체 신관을 부정한다. 삼위일체는 없다고 한다. 즉, 여화와 전능하신 하나님은 단 한 인격이라고 한다.
2) 예수의 신성을 부정한다. 예수는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며 창조된 피조물이라고 한다.
3) 성령의 신격이나 인격성을 부정한다. 즉, 인격적인 성령은 없고 그의 백성에게 힘을 주시기 위해서 부여하는 에너지나 화력으로 이해한다.
4) 죽음, 혼, 지옥에 관한 교리도 잘못되었다. 지옥도 부인한다.
5) 부활도 육체적 부활을 부인하고 영적인 피조물로 부활했다고 한다.
6) 구원관에 있어서는 믿음과 동시에 선행도 필요하다고 한다.
둘째로 여화와의 증인 신도들이 실제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특별한 관습인데 여기 소개하면
1) 여호와의 증인들은 우리 문화에서 준수되는 기독교적이든 세속적이든 다음에열거한 거의 모든 기념식에 참여하는 것이 금지된다.
(1) 생일, (2) 성탄절과 부활절 (3) 현충일, 추수감사절과 같은국가적인 기념일 (4) 기타 신년이나 어버이의 날과 같은 모든 다른 휴일등
2) 여호와의 증인들은 수혈이 금지되며,그들의 자녀들에게도 심지어 의학적으로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간주되 는 때 조차 수혈을 받는 것을 허용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3) 여호와의 증인들은 십자가를 기독교 신앙의 상징으로 간주하거나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며...
4) 여호와의 증인들은 정치 문제에 관여하는 것이 금지된다. 그들은 어떤 수준에서든 정부의 공직을 맡을 수 없고, 투표 나 로비 활동을 할 수 없으며, 국기를 내 걸거나 그것에 경례하지 않는다.
5) 앞의 요지들과 같은 맥락에서, 그리고 다른 이유들과 더불어, 여호와의 증인들은 심지어 비 전투원으로서 조차도 전 쟁에 참여하는 것이 금지된다.

이상과 같이 여호와의 증인 집단은 기독교의 교리적으로나 신앙인의 실천 생활면에서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집단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집단은 기독교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것이요, 나아가 사회와 국가에 끼치는 역 기능이 너무 크기 때문에 경계해야 할 집단이라고 하니 않을 수 없다. 언필칭 종교를 빙자해서 편협된 교리나 오도된 신앙으로 치닫는 이단이다. 여호와의 증인 집단이 신도들을 오도하고 있는 점은 병역거부, 수혈거부,국기배례 거부,학교교육 거부, 생업파괴,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병역의무의 불가피성
인류의 소망은 이 땅에 전쟁이 없고 평화만이 있는 세계를 꿈꾸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존철학자 싸르트르가 ‘전쟁은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상황이다’ 라고 갈파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케 하기 위해서 거룩한 전쟁이 수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세의 신학자 어거스틴은 소위 ‘의로운 전쟁’을 말하고 있다. “전쟁이 인간의 교만을 견책하고 겸손하게 만들며 와해시키는 신에 대한 복종으로 수행될 경우 그것은 의로운 전쟁이라고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전쟁의 정당성을 1)그 의도가 평화를 목적으로 할 때 2)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것일 때(부정의 보복) 3) 그 성격에 있어서 정달할 때(사랑의 동기) 4) 정당한 공적 권위자(국가)가 집행하고 그 후견인이 될 때를 말하고 있다. 아퀴나스도 의로운 전쟁에 참전하는 것은 죄가 아니며 “육체적인 전쟁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목적으로서 신적인 영적 선을 향한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고 했다. 그리고 전쟁에 대한 양심적인 반대와 비전투원의 책임면제에 대해서 대인(H.Dane)은 어거스틴의 사상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한시적인 통치자들이 명백히 신의 계명을 어긴다는 이유로(예를 들어 우상숭배 금지의 계명을 어기는 일) 그들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경우라도 우리는 국가의 명령에 항거할 권리도 없으며, 제도화된 권위를 모반할 권리도 없다. 우리가 의자할 유일한 것은 거룩한 순교자들을 본받아 통치자의 신성모독적인 계명에 복종하기를 거부하거나 묵종하기를 거부하되 저항없이 그것도 즐거운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부과하는 처벌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을 준수해야만 한다. 그것이 죽음이라 하더라도 정치적 권위에 저항하거나 파괴하려는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어거스틴은 병역을 거부하거나 이들을 위한 대체방안으로 비 전투요원이 되는것까지도 용인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서 하티건(R.Hartigan)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전시에 무죄한 자들, 특히 무고한 시민들과 비전투요원을 보호하기 위한 명백한 논의를 전혀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기독교 전통사상은 전시에 어떠한 구실이나 신앙양심을 빙자한 것으로도 병역의무를 거부할 수 없는것으로 말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과학의 발전으로 핵무기가 다량 생산된 후에 전쟁에 대한 견해도 변한 것은 사실이다. 전쟁에 대한 다양한 견해나 이를 수행하기 위한 병역문제는 찬 반 양론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오늘의 우리의 현실에서는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며 통일을 위해서도 국방의 의무는 신성시 되어야 하며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헌법 39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로 되어있고 이 의무는 '신성한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헌법 5조 2항) 병역의무는 사회 봉사나 다른것으로 대체될 수 없다. 그것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헌법 39조 2항에 “그러나 국방의 의무는 납세의 의무와는 달리 타인에 의한 대체적 이행이 불가능하다”고 되어있다.

본 교단의 입장
집총거부에 대한 본 교단의 입장은 분명하다. 신앙양심을 빙자한 집총거부나 병역거부는 용남할 수 없다. 이것은 본 교단뿐만 아니라 교단을 초월해서 범 기독교 입장에서도 이 문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를 떠나서 대다수의 국민은 집총거부나 병역거부는 용인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 될 것이다. 그 이유를 다시한번 정리 한다면
첫째는 기독교 성경해석의 오류와 편협되고 잘못된 교리로 이미 기독교로부터 이탈한 이단집단의 주장은 잘못된 것으로 이를 용납할 수 없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반전 명분으로 집총을 거부하고 있지만 사실은 교리적으로나 관습법에 의해서 국가와 정부를 사탄의 조직으로 보고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교리나 윤리면에서 매우 먼 거리에 있음을 보게된다.
둘째로 국가 안보를 위해서도 집총거부는 용인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지리적, 정치적, 역사적 특수상황에 처해있는 현실에서 병역의무는 더욱 강조되어야 할 사안이다. 여기에 예외 규정을 둘 수 없다.
셋째로 여호와의 증인들이 주장하는 집총거부와 병역거부, 수혈거부와 공직거부등 반 국가적, 반 사회적 주장을 용인 할 수 없다. 이것은 국가의 존립과 안정을 해치며 사회에 위화감을 조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 109회기 총회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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